괘사
둔(遁)은 형(亨)하니 소리정(小利貞)하니라. (둔은 형통하니 조금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라.)
퇴괘(遯卦)는 물러남이 역설적으로 더 큰 통로(亨)임을 설파하는 깊은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읽고 스스로를 보전하기 위한 고결한 선택입니다. 현대 사회의 치열한 경쟁과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종종 무리하게 밀고 나가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힙니다. 하지만 기운이 쇠하고 상황이 불리할 때 과감히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은 패배가 아닌, 내면의 중심을 지키는 현명한 처세입니다.
'소리정(小利貞)'은 물러남에 있어서도 작은 것이라도 올바름을 지켜야 함을 의미합니다. 즉, 외부의 요동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원칙과 소신을 굳건히 하며 자아를 정비하라는 뜻입니다. 잠시의 거리 두기와 휴식은 혼란을 정화하고, 다가올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에너지를 비축하는 과정입니다. 진정한 용기는 맹목적인 돌진이 아니라, 때를 알고 물러설 줄 아는 지혜에서 비롯됩니다. 지금은 뒤로 물러나 자신을 돌아보며 내면의 단단한 뿌리를 내릴 시기입니다.
괘체
둔미(遁尾)라 려(厲)하니 물용유유왕(勿用有攸往)하라. (달아나는데 꼬리가 됨이라 위태로우니 가는 바를 두지 말지니라.)
집지용황우지혁(執之用黃牛之革)이면 막지승열(莫之勝說)이리라. (황소 가죽을 써서 잡으면 능히 벗어나지 못하리라.)
계둔(繫遁)이라 유질려(有疾厲)하니 축신첩(畜臣妾)이면 길(吉)하리라. (매달려 달아나지 못함이라 병이 있는 듯 위태로우니 신하와 첩을 기르는 마음이면 길하리라.)
호둔(好遁)이니 군자(君子)는 길(吉)하고 소인(小人)은 부(否)하니라. (좋게 달아남이니 군자는 길하고 소인은 그렇지 못하니라.)
가둔(嘉遁)이니 정길(貞吉)하니라. (아름답게 달아남이니 바르게 하면 길하니라.)
비둔(肥遁)이니 무불리(無不利)하니라. (여유 있게 달아남이니 이롭지 않음이 없느니라.)